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 협상 (문단 편집) == 창설 == 하지만 1894년 러불동맹이 창설되던 시점에서 [[영국]]이 가담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. 전통적으로 영국은 [[고립주의]]를 준수해 왔던 데다가, 프랑스, 러시아 모두와 사이가 극악[* 프랑스와야 뭐, [[영프관계|모두가 알다시피 몇 백 년동안 라이벌 관계였고]] 러시아와도 [[러시아 제국]]의 [[그레이트 게임|세력확장을 막느라고]] [[크림 전쟁]], [[거문도 점령 사건]] 등등 전세계에서 머리채(...) 잡고 싸웠다.]이었기 때문이다. 한편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영국은 더 이상 19세기 중반과 같이 독보적인 국력의 소유자가 아니게 됐고, 이로 인해 영국 내부에서 '우리도 동맹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!'라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. 그리고 이에 추파를 던진 것이 바로 독일. [[하노버 왕조|당시 영국 왕실]]이 [[하노버 왕국]] 출신이었던데다가, 양국 모두 [[게르만]] 계통의 민족[* 영국 [[앵글로색슨족|앵글로색슨]]의 색슨이 바로 독일의 [[니더작센]]이다.]이었기 때문에 서로간의 호감이 어느 정도 존재[* 대놓고 당시 독일 황실과 총리가 '우리 같은 튜튼족인데 친하게 지내요'하고 다녔다.]하는 상황이었다. 이런 상황에서 양측은 식민장관 조지프 체임벌린[*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[[네빌 체임벌린]]의 아버지이다.]의 주도하에 [[1898년]]과 [[1901년]] 사이에 진지하게 동맹을 맺기 위해 3번이나 회담을 가졌으나 막판단계에서 결렬되고 만다. 동맹 결렬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우선적으로 지목해야 할 점은 동맹으로 상대에게 지녀야 할 책무에 대해서 양 국가가 생각했던 차이가 너무 컸다는 사실이다. 유럽 내의 일에 (대륙 내의 세력 균형이 [[루이 14세|무너지는]] [[나폴레옹 전쟁|일이 발생]]하지 않는 이상) 관심을 두지 않는 [[고립주의]]의 전통을 200년 가까이 지녀왔던 영국은 독일과의 동맹에서 군사적인 의무를 명기하기를 매우 꺼렸던 반면, 독일은 제3국과의 전쟁이 발발했을 시 영국이 독일을 군사적으로 지원해 주기를 동맹의 조건에 반드시 포함시키기를 원했고 이러한 이견에서 양국은 끝끝내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.[* 실제로 이후 영국이 프랑스와 체결한 [[영불협상]]에서도 군사적인 의무를 명기하지는 않아서, [[사라예보 사건]] 이후 일련의 위기 사태에서 프랑스는 영국의 참전 확약을 받아내기 위해 전전긍긍해야했고, 독일이 [[슐리펜 계획]]을 실현하기 위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영국이 1914년 8월에 즉각적으로 프랑스를 도와 [[1차대전]]에 참전했을지 여부는 오늘날까지도 외교학 분야와 역사 분야에서 꽤나 핫한 논쟁거리이다.] 또한 민주주의가 약했던 독일 제국은 이 동맹을 비밀로 유지하길 원했던 반면, 영국은 공식적인 의회의 재가를 받기를 원했던 사실 역시 중요한 점이다. 만약의 의회의 재가를 받지 않고 동맹을 유지했을 경우에는 영국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났을 때 언제든지 동맹이 파기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.[* 대표적으로 이 회담이 열리기 바로 직전에 영국 총리를 지냈던 [[윌리엄 글래드스턴]]의 경우에 상당한 혐독주의 성향으로 유명했다. 사석에서 비스마르크를 악의 화신으로 간주하는 발언도 수차례 남겼을 정도.] 비록 동맹 체결은 결렬됐지만, 최소한 영국을 우호적인 중립국으로 남겨둬야 하는 상황에서 [[빌헬름 2세]]의 외교적 실책이 연달아 터져나온다. 당시 영국의 국왕 [[에드워드 7세]]를 사탄이라고 까지를 않나,[* 사실 빌헬름 2세 입장에서는 에드워드 7세가 싫을 만 하기는 했다. 그가 삼국 협상을 성사시켜 독일을 견제했기 때문이다.] 대놓고 '[[대양함대]] 건설'을 부르짖으며 영국와 [[건함 경쟁]]을 벌였던 것이다.[* 영국은 섬나라고 자국의 안보는 해군에 많이 의존한다. 더욱이 이 시대엔 공군이란 게 없으니 더욱 그럴 테고. 그러니 영국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의 해군이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.] 그리고 이는 또 하나의 엄청난 외교적 혁명을 가져온다. 영국이 오랜 원한을 잊고 [[프랑스 제3공화국|프랑스]]와 [[영불협상]]을 [[1904년]] 체결한 데 이어, [[1907년]]에는 러시아 제국과도 [[영러협상]]을 체결한 것이다. [[독일 제국]],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, [[이탈리아 왕국]]의 삼국 동맹과 자웅을 겨루는 또 하나의 거대한 강대국 사이의 동맹체인 삼국 협상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이다. 게다가 그나마도 [[제1차 세계대전]]이 일어났을 시 영국을 자극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실제로 빌헬름 2세도 영국이 참전하는걸 극히 꺼려 간신히 영국과 협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에 세워놓은 [[슐리펜 계획]] 때문에 독일군은 벨기에를 침공, 영국이 보증한 벨기에 중립이 짓밟히자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